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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리뷰] 이동진 추천 '존 오브 인터레스트' 감상문

by Wanderlust Jamie 2024.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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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MDB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벌어진 극악무도한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쉰들러스 리스트, 사울의 아들 등 그동안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이 다양하게 나와 호평을 받아왔는데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홀로코스트'라는 주제는 동일하게 다루지만 이전 홀로코스트 영화들과는 차별점이 있습니다. 이전 영화들의 주인공은 모두 유대인이며 피해자에 초점을 맞춰 그들이 겪은 비극을 보여주고 깊은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주인공은 가해자인 나치군 장교의 가족입니다. 영화는 내내 이 가족의 평온한 삶의 단편들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유대인들의 모습은 지나가는 짧은 컷 또는 소리로만 등장합니다. 이렇게 가해자에 시선을 맞추다 보니 이 영화를 보면 슬픔보다는 분노와 역겨움의 감정이 치솟는 걸 느끼실 수 있습니다. 또한 이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어서 더욱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출처: IMDB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간단합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운영을 진두지휘한 독일군 장교 루돌프 회스의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가족은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도 화목하고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 아이들은 손수 만든 배를 아빠 생일 선물로 주며 가족 모두 모여 행복하게 생일 파티를 합니다. 전원 속의 아름다운 집에서 자상한 아빠는 매일 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엄마는 집 앞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며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생활을 이어나갑니다. 
 
하지만 회스 가족은 일반적인 가정과는 조금 다른게 하나 있는데요. 그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꾸려나가는 집은 사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장 바로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집 앞 담장 너머 수백만명의 무고한 삶이 끔찍하게 희생당하고 있는데도 이들 가족은 아무 죄의식 없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갑니다. 물론 어른과 아이 모두 그 너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담장 너머에서 시체 타는 냄새와 연기가 피어오르고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겠죠. 그러나 이들은 그저 자신들의 배부른 삶에 취해 타인의 비극에 무감각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출처: IMDB

 
영화는 유대인의 희생과 착취를 회스 가족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보여줍니다. 장교 부인 헤트비히 회스가 유대인 수감자들로부터 몰수한 옷을 입어 보며 흡족해하는 장면, 집 앞 아름다운 꽃밭에 뿌려지는 뭔가 수상한 퇴비, 근처 강가에서 아이들과 물놀이 중에 떠내려 온 시꺼먼 재. 학살의 흔적이 이들의 한적한 일상에서 불현듯 등장할 때마다 '설마 진짜 그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불편한 감정이 솟아올랐으며, 자칭 '아우슈비츠의 여왕'인 헤트비히가 이곳은 낙원이라고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분노의 감정을 넘어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출처: IMDB

 
아빠 루돌프가 영화에서 그려지는 모습도 굉장히 기괴하고 모순적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학살을 총괄하는 장교로서 그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더 빠르게 죽일 수 있을지에 몰두합니다. 유대인 가스실과 소각소 설계권을 따내고자 집으로 찾아온 기업 임원들과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쓰레기 소각장을 얘기하듯이 시체 소각의 효율성을 높이는 법에 대해 의견을 나눕니다. 그런데 인간 목숨에 대해서는 이렇게 무감각하고 차가운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이 키우는 말이나 길에서 만난 개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애정 어린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아이들에겐 다정한 아빠, 착실한 가장이기도 합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대량 학살범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라고 합니다. 루돌프는 감정이 없는 잔인한 사이코패스로 태어나서 수백만 명을 학살한 것이 아니라, 살다 보니 그런 무자비한 짓을 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평범한 사람인 것입니다.
 

출처: IMDB

 
그럼 회스 가족의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이러한 잔인한 인간의 모습으로부터 자유로울까요? 영화에서는 중간중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그들의 놀이 속에도 비극의 흔적과 잔인함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잠들기 전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자세히 보면 시체를 소각하고 남겨진 이빨 조각이고, 창 밖에서 들리는 소각장 기계소리를 무심코 따라 하며 재밌어 하기도 합니다. 영화 후반부에는 더 나아가 형이 동생을 정원의 온실에 가두고는 밖에서 쉬~~쉬~~하며 가스가 나오는 소리를 따라하며 낄낄거립니다. 유대인 가스실을 모방한 놀이인 셈이죠. 이 아이들 또한 '그런 존재가 되어버리는 인간'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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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영화는 이러한 기괴한 일상 속에서도 인간의 양심과 선함을 지켜내는 사람도 보여줍니다. 바로 유대인 수감자들이 노역을 하러 나왔을 때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매일 밤 몰래 사과를 담장 밖에 뿌려 놓는 폴란드 소녀인데요. 이 소녀 역시 실존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뿌린 사과는 비록 말발굽에 무참히 짓밟히기도 하고 굶주린 수감자들 간 다툼을 일으켜 총살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모두가 돌아버린 것 같은 반인륜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의 선함을 지켜내는 희망의 씨앗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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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루돌프 회스가 계단을 내려가다가 구역질을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그간의 업적을 인정받아 수용소 현장이 아닌 군의 전략을 담당하는 관리부로 승진하여 가족으로부터 잠시 떠나 살던 루돌프는 영화 후반부에 다시 이전에 담당하던 수용소 학살 총책을 맡게 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데요.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는 끔찍한 임무를 수행해야 함에도 그는 들뜬 마음으로 부인에게 이러한 소식을 전하며 행복해합니다. 그러고는 건물을 내려던 중에 구역질을 마구 하게 된 것입니다. 이 구역질 장면에 대해 찾아보니 다양한 해석이 있었는데요. 제가 가장 와닿았던 해석은 몸에서 거부 반응이 나오는 거라는 해석이었습니다. 루돌프는 이제 무자비한 인간이 되어버려 학살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아직 조금이나마 인간 본연의 양심과 선함이 남아 있어 무의식적으로 몸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켜 구역질을 하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외에도 죄에 대한 대가로 병에 걸려 죽는 거다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와있어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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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감독이자 유대인인 조나단 글레이저는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 우리의 모든 선택은 '그때 그들이 한 일을 보라'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보라'라고 말하며 현재의 우리를 반성하고 직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All our choices were made to reflect and confront us in the present — not to say, “Look what they did then,” rather, “Look what we do now.”)"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을,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최근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폭격을 의미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과거 유대인들이 겪었던 참상은 현재 유대인들이 가하고 있는 폭격과 그에 따른 살상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 당시 우리가 겪었던 일을 보며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반성하자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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